타입브랜딩이 뭔데요?



문자는 문화를 담는다. 폰트는 브랜딩을 담는다.
폰트는 일정하고 일관되게 설계된 문자 세트를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문자이며 ‘정보전달’을 주요한 기능으로 합니다. 하지만 폰트의 '정보전달'은 문자가 갖는 의미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폰트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표방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배경의 영화 제목을 장식적인 폰트로 쓴다거나, 기후위기를 호소하기 위해 빙하의 모습으로 그려진 폰트를 사용한다거나 등. 폰트는 의미를 넘어 입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자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문자는 문화를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자에 문화가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폰트도 같은 맥락을 공유합니다. 다만 폰트는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 개발되어, 보다 입체적인 문화를 담습니다. 폰트 업계에서는 이를 타입브랜딩*이라고 부릅니다.
*주체에 따라서 타이포브랜딩, 폰트브랜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나, 산돌에서는 타입브랜딩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손글씨’로 문화를 쓰는 러쉬
타이브랜딩의 사례를 이야기한다면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를 들 수 있습니다. 러쉬는 ‘친환경', ‘동물보호’, ‘인권 향상’ 등의 키워드를 지향하는 브랜드로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이를 배경으로 러쉬의 전용 폰트 「Lush Handwritten」에는 핸드라이팅 특유의 자유분방한 인상으로, 그들이 지향하는 문화를 전달합니다.
*「Lush Handwritten」는 러쉬의 글로벌 디렉터 ‘케이티 타브람’과 달튼막이 협업하여 개발했다.
달튼막 (링크)
타입브랜딩 관점에서 러쉬가 흥미로운 점은, 전세계 러쉬 매장의 블랙보드(제품 설명 카드)를 매장 직원이 직접 손글씨로 작성한다 것입니다. 러쉬는 이를 위해서 VMD들에게 정기적으로 러쉬체의 핸드라이팅을 교육합니다. 단순히 일관된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손글씨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텐데, 왜 번거롭게 손글씨를 고집하는 걸까요?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즉, 문화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가르친다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지식은 시간이나 경험을 필요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쉬가 손글씨를 고집하는 것은, ‘문자’를 매개로 브랜드의 메시지를 내외부로 경험시키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작성된 ‘손글씨’는 러쉬 매장 곳곳에 진열되며 문자의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블랙보드는 단순히 제품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친환경’, ‘핸드메이드’ 등 본래 문자였다면 전달되지 않았을 입체적 정보를 담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러쉬체에 러쉬가 추구하는 ‘문화’가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워크맨 러쉬편 (링크)
브랜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고객이 다른 브랜드와 명확히 구분 지어 인지시키는 일입니다. 러쉬는 브랜딩의 관점에서 이를 잘 수행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러쉬를 떠올릴 때, 단순히 제품이나 가격만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키워드와 진정성 등을 더불어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브랜드 활동의 근저에는 러쉬의 문화가 스며든 문자, 타입브랜딩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배민 회사에는 왜 ‘문자’가 많을까?
국내에서 타입브랜딩 사례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배민은 모두에게 친숙한 배달 플랫폼으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매우 선명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배민은 TV광고, 배민 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등. 웃음을 자아내는 파격적인 활동을 통해 이른바 ‘B급 문화’를 아이덴티티로 내세웠습니다. 직장인들에게는 유쾌하고 공감을 사는 배민의 ‘사내문화(링크)’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민의 고유한 문화를 이야기하는 ‘배민다움’을 살펴보면 늘 ‘문자’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배민이기에 폰트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아한형제들 (링크)
배민이 제작한 다양한 폰트들은 폰트 마케팅, 브랜딩 등의 대표적인 예시로 소개됩니다. 그만큼 잘 만든 폰트가 브랜드 홍보에 얼마나 용이한 수단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배민이 ‘문자’를 통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 즉, ‘문화’를 강화해 나가고자 하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사옥 곳곳에는 흥미로운 ‘문자’들이 붙어있습니다. 사내 회의실 이름은 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따와 사용하는데 이는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의도를 담습니다. 회의실의 꼬불꼬불한 글자도 이름의 주인공인 자녀들이 직접 쓴 손글씨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배민의 첫 번째 폰트인 ‘배민 한나체’는 김봉진 대표의 자녀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배민 한나체'를 리뉴얼한 ‘배민 한나는 열한살체’의 이름은 당시 ‘한나’가 열한 살이 되던 해였다는 명쾌한 배경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