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틀어줘!” 유튜브는 왜 랜덤 재생 기능을 테스트할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요즘, 점점 더 많은 사용자들이 보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 막상 플랫폼에 진입하더라도 어떤 콘텐츠를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시청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최적화된 시간 소비를 원하기 때문이죠.
그 결과 최근 몇몇 사용자들은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뭘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다”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는데요. UX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사용자가 앱 서비스 사용에 장벽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니 그다지 좋은 현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최근 유튜브는 이런 사용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지난해 연말 유튜브 모바일 앱 19.50 버전에 나타난 ‘아무거나 재생(Play Something)’ 버튼 기능입니다.
이 버튼은 화면 우측 하단에 자리 잡고 있으며, 버튼을 누를 시 기존 메인 홈에서 추천되는 영상과는 별개로 새로운 영상을 무작위로 재생하는데요. 기존 개인화 알고리즘에 기반한 영상이 아니며, 일반 영상도 쇼츠 플레이어 형태로 재생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기능 테스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기능은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2023년에도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유튜브는 왜 기존 알고리즘 추천 방식을 놔두고 이런 새로운 기능을 시간과 자원을 들여가며 테스트하고 있는 걸까요? 이번 기사에선 아무거나 재생 버튼과 같은 랜덤 재생 기능 UX의 필요성을 조명하고, 과거 넷플릭스의 실패와 함께 유튜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봅니다.
‘결정 피로’를 줄여주는 랜덤 재생 기능
현재 유튜브 측은 “테스트 중에 있는 기능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기존 유튜브 사용자들은 물론, 업계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양한 추측과 기대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UI·UX 관계자들에게선 기존 유튜브의 ‘결정 피로’가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요.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는 사용자가 많은 결정을 반복적 또는 연속적으로 내릴 때,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심리학 현상을 말합니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수많은 엔터테인먼트·커머스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다양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제공하는 주된 이유도 바로 이 결정 피로를 해소하기 위함이죠.
실제 외신 애널리틱스 인사이트는 “이 기능은 그동안 유튜브가 해오던 개인 맞춤형 콘텐츠 제안과 사용자 상호작용 개선 작업들을 보완한다”며 “아무거나 재생 버튼이 무의미하게 콘텐츠 제안 화면을 스크롤 하는 시간을 줄여든다면 사용자들의 인내심 소모를 줄이고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는 분석을 공유했는데요.
12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 프로덕트 매니저인 로히트 베르마 엔젤 원 그룹 제품 관리자 역시 “제안 화면을 스크롤 하는 사용자에게 잘 보이게끔 전략적으로 배치된 이 버튼은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플랫폼을 떠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필터 버블’ 완화에 도움되는 랜덤 재생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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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재생 버튼은 단순히 사용자의 선택 부담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유튜브의 알고리즘 추천 방식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 또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지금의 유튜브 알고리즘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아무거나 재생 버튼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현재 유튜브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시청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시작점에서 출발해 사용자와 유사한 다른 사용자들의 시청 습관을 비교해 사용자가 시청하고 싶어 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알고리즘 기반 추천 방식은 자칫 사용자가 ‘필터 버블’에 갇힐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기록과 취향 등을 기반으로 콘텐츠나 광고를 추천하면서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비슷한 정보에만 노출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요.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사용자는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인지적인 편향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랜덤 재생 기능은 사용자가 기존 관심사와 다른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필터 버블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랜덤 재생 기능은 사용자의 관심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콘텐츠 취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는 열쇠가 되기도 하는데요.
실제 UX 전문가이자 인간공학기술사인 오의택 인사이터 역시 <디지털 인사이트>에게 “알고리즘의 추천이 현재의 관심 영역만으로 수렴되는 것은 사용자의 가치관 균형이나 사고방식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아무거나 재생 기능도 이런 필터 버블 문제를 줄여주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사한 넷플릭스 ‘서프라이즈 미’ 버튼의 실패
물론 유튜브의 새로운 기능 테스트에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테스트 소식이 들려온 직후, 과거 넷플릭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요. 바로 유튜브의 아무거나 재생 버튼이 과거 넷플릭스가 시도했다가 이미 한 번 실패한 서프라이즈 미 버튼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4월, 넷플릭스는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수천 개의 영상 콘텐츠들에 압박을 받는 사용자들의 선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기능을 설계해 공개했습니다. 한국에선 ‘뜻밖의 발견, 기대할게!’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버튼은 클릭 시 넷플릭스에서 사용자가 좋아할 것 같은 영상 콘텐츠를 무작위로 재생하는 형태였는데요.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는 ‘지나치게 낮은 사용률’을 이유로 기능을 삭제했습니다. 당시 넷플릭스는 “사용자들은 특정 드라마, 영화 또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어 서프라이즈 미 버튼과 같은 기능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기능 삭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때문에 많은 UI·UX 디자이너가 이번 유튜브의 아무거나 재생 버튼이 넷플릭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세심한 사용자 경험(UX)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언들은 다양하지만 이들이 입을 모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용자가 관심 없거나, 반감을 가질 콘텐츠를 피하는 세심함’인데요.
실제 로히트 베르마 프로덕트 매니저는 “이 기능의 성공은 사용자의 선호도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 무작위 제안이 사용자의 관심사와 일치하면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의택 인사이터 역시 “필터 버블도 문제이지만 사용자가 원치 않거나 종교나 정치처럼 반대되는 입장의 콘텐츠가 제안된다면 그 또한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며 “때문에 현재의 관심사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형태로 콘텐츠가 추천돼야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마치며
결국 이번 아무거나 재생 버튼 테스트는 또다시 유튜브가 앱 서비스의 사용성을 높이고, 기존 알고리즘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도약 준비 단계인 동시에, 정교하면서도 깊은 UX 디자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유튜브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2008년 우리가 처음 추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추천 경험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가 보고 싶은 영상을 찾고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단순한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과연 유튜브가 사용자의 니즈와 편의성을 충분히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여 UX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콘텐츠 큐레이팅 및 추천으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